상단영역

본문영역

  • 기자명 김혁주
  • 로컬맥주
  • 입력 2021.02.25 16:30
  • 수정 2021.11.18 12:28

[로컬맥주(10)] 2부: "전문 모델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신다고요?"-"개항로 맥주" 포스터 모델, 동화마을 벽화미술가 최명선 어르신

로컬 브루어리 <인천 맥주>와 '개항로 프로젝트' 이창길 대장이 함께 만든 크래프트비어는 새로운 로컬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. "호불호가 갈리는 크래프트비어를 '누구나' 즐길 수 있는 맥주로 만들 수는 없을까?"라는 고민끝에 만들어진 <개항로 맥주>. 맥주병에 그려진 '개항로'라는 글씨는 54년 동안 개항로에서 목간판을 만든 <전원공예사>의 전종길 사장님이 썼고, 인천 <인형극장> 영화 간판을 그리다가 동화마을 미술가로 변신한 동화마을 벽화미술가 최명선 어르신께서 맥주 포스터 모델이 됐습니다. 또 <개항로 맥주>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두가 알 수 있도록 <라이트 하우스> 전시장에서 스토리를 공유하기도 했는데요. '지역성을 포함하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술'인 <개항로 맥주>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.

1부: 작은 공간에 알차게 담았다!-<개항로 맥주> 팝업
2부: "전문 모델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신다고요?"-<개항로 맥주> 포스터 모델, 동화마을 벽화미술가 최명선 어르신
3부: 쉼표가 느껴지는 글씨 '개항로 맥주체'-<전원공예사> 전종길 사장

비로컬 2월 특집 주제는 1월과 마찬가지로 "로컬 맥주"입니다. 1월에는 '크래프트 정신'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. 2월 로컬맥주 특집에서는 크래프트비어 문화가 로컬브루어리를 통해 어떻게 문화로 정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.

<개항로 맥주>의 포스터 모델로 활약한 동화마을 벽화미술가 최명선 어르신. 페인트가 가득한 작업장에서 만나뵀다. (beLocal 이상현 에디터)

레트로 느낌이 물씬 나는 <개항로 맥주>의 포스터는 꽤나 인상적인데요. 포스터를 만들기 위해 시니어 모델을 섭외한 것 같지만, 사실은 개항로에서 약 20년간 페인트 가게를 운영하면서 <동화마을> 벽화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명선 어르신이 모델입니다. 그림을 그리던 노포 어르신이 어떻게 <개항로 맥주>의 모델이 된 걸까요? 그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.

▶<개항로 통닭> 이창길 대장하고는 인연이 어떻게 되세요? 이창길 대장이 <개항로 통닭> 옆 골목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, 누가 그린 건지 수소문을 해서 어르신을 찾았다고 그러더라고요. 저희가 볼 때도 그냥 골목에 누가 낙서처럼 그린 거라기엔 색감이 참 예뻤어요.

☞최명선: 내가 극장 간판 했던 게 소문이 나서 벽화 그림 주문이 들어오고 그랬거든요. 인천 중구에 <동화마을> 벽화 일도 하고 있어요. 여러 사연이 있는데, 아무튼 이 벽화 보수를 할 때 컬러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. 젊은 시대에 맞춰서 좀 바꿔가면서 해야 하는데 그런 작업들을 했어요.

어느날 이 대표가 우리 가게를 찾아와서 처음 만났어요. 옛날에 경동거리가 신혼부부들이 많이 와서 혼수품을 사는 거리였거든요. 그런데 이제 시대가 변해서 거리도 변했잖아요. 이 대표가 그 과거를 현실로 바꿔서 거리에 맞는 프로젝트를 해보려고 한다고 그래요. 그래서 내가 보탬이 될 수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했어요. 그랬더니 장인이라고 해야 하나 노포, 즉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었어요. 그래서 그 책자 만들 때 참석을 하게 됐죠.

레트로 느낌이 물씬 나는 <개항로 맥주> 포스터. (인천맥주 인스타그램)

▶극장 간판 일은 어떤 계기로, 언제 시작하시게 되었나요?

☞ 최명선: 올해 내 나이가 70 정도 됩니다. 내가 어린 시절에는 다 먹고사는 게 좀 힘들었어요. 그래서 기술을 배워야겠다 싶어서 서울에 가 세공 일을 배웠거든요. 그런데 우리 어머님이 제가 태어날 때 달을 보셨다고 그래요. 뒤뜰에 달이 떨어진 걸 가져다가 안방에 올려놨더니 아랫목에 조그만 옥동자가 있었다는 거예요. 어머니가 “너는 하늘을 보고 태어났으니 여러 사람이 보는 직업을 택해야 한다”면서 “니가 어릴 때부터 만화책을 베껴 그림을 그렸는데, 그림 그리는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?” 하시더라고요. 그 말씀을 듣고 인천으로 돌아왔어요.

하지만 그때만 해도 학원도 없고 그림 배우기가 쉽지 않았어요. 옛날에 서울 아현동에 만화 동네가 있었거든요. 다시 서울로 가서 무작정 그 동네를 찾아가 초안 작업부터 그림을 배웠죠. 그러다가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는데, 어느날 보니 극장 간판이 참 멋있더라고요. 그래서 무작정 또 간판실을 찾아갔어요. 그렇게 간판실 막내로 일을 시작한 게 극장 간판 그리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인데, 그 때가 벌써 중학교 때에요.

지금은 신나를 쓰지만 그 때만 해도 휘발유를 팔레트 위에서 희석해서 썼거든요. 남들은 그 냄새를 싫어하면 그림 못 그린다고 했는데, 나는 그 냄새가 그렇게 좋더라고요. 그래서 팔레트 닦고 심부름하면서 무일푼으로 막내 생활부터 시작했죠. 당시 인천에 극장이 한 10개는 있었던 것 같은데, 동시상영을 해서 간판이 여러 개가 붙는 하류극장부터 해서 이 극장, 저 극장 옮겨 다니면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게 됐어요. 극장 간판실에서 미술부장이 최고로 높은 자린데 거기까지 올라가게 됐습니다. 나중에는 서울까지 범위를 넓혀서 <구리극장>, 부천 <장안극장> 등 몇 군데를 혼자 동서남북으로 다니면서 간판을 그렸죠.

최명선 어르신이 직접 그린 전설적인 배우 '제임스 딘'. 영화 <자이언트> 등의 주인공으로 올드 영화팬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는 배우다. (beLocal 이상현 에디터)

▶극장 간판 그리는 일은 언제까지 하셨나요?

☞최명선: 90년대부터 CGV라는 극장이 들어오기 시작했거든요. 극장이 그렇게 클 줄 몰랐어요. 기존 극장들은 기껏해야 1관 있고 많아야 3관까지 있는데 CGV는 5관, 6관, 뭐 8관까지 있잖아요. 관객 입장에서는 내가 볼 수 없는 영화가 없는 거지. 다 있으니까.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거기 가서 영화를 보게 되는 거예요. 오락, 멜로 다 고를 수 있으니까. 미술부장이 봉급이 센 편인데 기존 극장이 타격을 받으니까 내가 좀 보탬이 될까 해서 2002년에 <인형극장>을 끝으로 자진 하차를 했어요.

그리고는 지금 가게를 차려서 집 페인트칠도 하러 다니고 벽화도 그리고 하다 보니 19년 동안 이 자리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.

페인트와 미술도구가 가득한 작업실 입구. (beLocal 이상현 에디터)

▶<개항로 맥주> 모델이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.

☞최명선: 처음에 이창길 대표가 나한테 모델 문의를 해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. 왜냐면 각선미도 있고 인물도 좋아야 하고 체격도 있어야 하고 그래야지만 모델이 되는 줄로 알았거든요. 내가 젊어서는 체력이 좀 좋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모델을 한다는 게 의아했어요. 이 대표 말로는 괜찮다고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. 그래서 그 친구가 하자는 대로 하니까, 사진 다 찍고 난 다음에 흡족해하더라고요. 그러니 나처럼 B급이나 C급 되는 인물도 모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구나 했죠. 친구들한테 전화가 얼마나 왔는지 몰라요. 내가 친구들한테 너는 인물이 좋으니까 양주 쪽 모델도 될 거라면서 우스갯소리도 하고 그랬습니다.(웃음)

▶이창길 대장님이 전해주신 소식인데요. 따님이 <개항로 통닭>에 오셔서 포스터 모델이 우리 아빠라고 좋아하셨다고도 하더라고요.(웃음) 사실 포스터만 봤을 때는 ‘전에 모델이셨을까?’ 싶을 정도로 이 독특한 포즈가 엄청 자연스러워 보였어요.

☞최명선: 내가 원래 모델이었으면 스튜디오에서 여유롭게 하겠지만, 그게 아니더라고요. 웃기도 하고 소리도 질러보고 자유자재로 병 들고 움직이고 그러다보니 나왔어요. 그 저기 맥주 전문가랑 이창길 대표랑 나랑 셋만 있으니까, 여기서 “‘아’ 소리 질러보자” 하면 소리 지르고 "이런 포즈 취해보자" 하면 따라 하면서 수많은 컷을 찍으니까 그중에 그런 게 하나 나오더라고요.

최명선 어르신은 인천 <동화마을>에서 벽화를 그리고 있다. 인터뷰를 마치자 <동화마을>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. (beLocal 이상현 에디터)

▶정말 맥주가 맛있어 보이는 포스터에요. 개항로라는 오래된 거리에서 오랫동안 터 잡은 어른이 “이거 맛있으니 군소리 말고 마셔봐!” 하는 느낌도 들고요!

☞최명선: 과거에 모델을 했던 사람이 했으면 사실은 더 잘 나갔겠죠?(웃음) 내가 정석으로 그림을 배워서 조소과를 나오고 그런 건 아니지만, 하나의 재능을 살려서 여기저기서 그림을 배웠잖아요. 산전수전 겪은 사람이고 또 미술 극장에 대한 추억이 있거든요. 옛날에 60년대~80년대는 명절이면 극장마다 백미터씩 줄을 섰어요. 내가 그런 극장의 간판을 그리고 또 여러 영화들을 보니까 어떨 땐 이 영화가 흥행이 되겠다 안 되겠다고 보이더라고요. 그런 나만의 추억들이 있으니까, 그게 포인트가 되어서 나름 그 맛이 포스터에서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드네요...

최명선 어르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<개항로 맥주>가 하나의 로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. 우리 아빠가, 내가 아는 친구가 모델이 된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고 그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주민들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 거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. 지역주민과의 공감이라는 콘텐츠를 크래프트비어라는 그릇에 담아 새로운 문화를 표현하고 있는 개항로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.

저작권자 © 비로컬ㅣ로컬 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듭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

관련기사

개의 댓글

0 / 400
댓글 정렬
BEST댓글
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.
댓글삭제
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.
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?
댓글수정
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.
/ 400

내 댓글 모음